남대문시장 갈치골목에서 기억에 남은 진주집 도가니탕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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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길 22-2.
남대문시장 갈치골목 안쪽에 있는 진주집이다.
관광객이 많아 평소에는 잘 가지 않게 되는 곳이지만, 이상하게도 날이 흐리고 바람이 차가운 날이면 시장이 떠오른다. 특히 남대문시장은 걷는 것만으로도 온도가 달라지는 느낌이 있다. 포장마차에서 올라오는 김, 골목 사이를 메운 사람들, 오래된 가게 간판까지.
이번에도 그런 날이었다. 회현역 5번 출구로 나와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갈치골목 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분명했다. 도가니탕이다.
1. 남대문시장 안에서 이 집을 찾게 되는 흐름
시장에서 식당을 고를 때 나는 빠르게 결정하지 않는다. 특히 노포가 많은 곳일수록 한 번 더 본다. 진주집은 멀리서도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간판, 문 앞에 달린 여러 개의 블루리본, 그리고 줄 서 있는 사람들.
이 집이 70년을 버텼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한 설명이 된다.
(1) 문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되는 이유
가게 앞에 서면 가격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꼬리곰탕, 도가니탕, 모듬수육. 솔직히 말해 저렴한 편은 아니다. 나도 잠깐 계산을 해봤다. 이 정도 가격이면 다른 선택지도 많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뒤따른다.
‘오늘 같은 날, 이 골목까지 들어왔다는 건 이미 답이 나와 있는 거 아닌가.’
추운 날씨에 몸이 먼저 찾는 음식이 있다. 그게 국물이고, 그중에서도 이런 종류의 국물이다.
(2) 안으로 들어가 보니 느껴진 분위기
가게 안은 밝다. 시장 골목 안쪽에 있지만 답답한 느낌은 없다. 동네 단골과 처음 온 손님이 섞여 있는 전형적인 시장 식당 분위기다.
나는 이런 공간이 좋다. 과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아도 각자 자기 방식으로 식사를 하는 곳이다. 주문은 간단하게 했다. 도가니탕 하나, 모듬수육 하나.
2. 첫 국물에서 느껴진 방향
음식이 나오면 나는 늘 같은 순서로 먹는다. 반찬보다 국물부터다. 이 집 도가니탕은 처음부터 강하게 치고 들어오지 않는다.
(1) 아무것도 넣지 않고 한 숟가락
국물은 뽀얗지만 무겁지 않다. 첫맛은 담백하고, 뒤로 갈수록 소의 향이 은근하게 남는다. 잡내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국밥이나 탕을 먹을 때 소금부터 넣지 않는다. 기본 맛을 충분히 보고 나서 판단한다. 이 집은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깊어지는 타입이다.
2023년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도 겨울철 따뜻한 국물 음식이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물론 음식 하나로 무엇이 달라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있으면 몸이 먼저 풀리는 느낌은 분명하다.
(2) 도가니의 식감이 주는 인상
도가니를 젓가락으로 들었을 때부터 느낌이 다르다. 탱글한 탄력이 있지만 질기지 않다. 입에 넣으면 오래 씹을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나는 예전에는 이런 부위를 일부러 찾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식감이 부드러운 음식이 더 편해진다. 무릎이 달라졌다기보다는, 내 선택 기준이 바뀐 것이다.
3. 모듬수육을 함께 주문한 이유
(1) 한 접시에서 느껴진 차이
모듬수육에는 도가니, 양지, 벌집양이 올라온다.
- 양지는 얇지만 퍽퍽하지 않다. 촉촉하고 담백하다.
- 벌집양은 손질이 부족하면 향이 남기 쉬운데, 이 집은 그런 부분이 거의 없다.
- 도가니는 탕 안에 들어 있는 것보다 더 끈기가 느껴진다.
여러 지역의 곰탕집을 다녀본 경험상, 내장류에서 잡내가 없다는 건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뜻이다. 이 집은 그 기준을 넘는다.
(2) 깍두기가 역할을 한다
이 집에서 인상 깊었던 건 깍두기다.
그냥 먹었을 때는 산미가 과하지 않고, 단맛과 발효 향이 균형을 이룬다. 국물과 함께 먹으면 담백한 맛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소금을 따로 넣지 않아도 간이 맞는다.
나는 국밥을 먹을 때 늘 깍두기와 함께 몇 숟가락 먹어보고 결정을 한다. 이 집은 그 과정이 자연스럽다. 다만 깍두기 국물을 섞어 먹는 방식은 취향이 갈릴 수 있다. 처음이라면 기본 맛을 충분히 본 뒤 선택하는 게 낫다.
4. 밥을 말고 나서야 완성되는 흐름
(1) 밥을 말았을 때 달라지는 느낌
처음에는 국물과 도가니 위주로 먹다가, 중반쯤 밥을 말았다.
밥을 넣기 전에는 국물이 맑고 담백하다. 밥을 말면 점성이 살짝 생기면서 포만감이 빠르게 올라온다. 도가니와 밥이 어울리면 그릇의 성격이 바뀐다.
나는 그날도 뚝배기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먹었다. 몸이 따뜻해지고, 밖에서 맞았던 바람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2) 가격보다 계절이 먼저 떠오른 이유
이 집은 가성비만 놓고 보면 고민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건 일상적인 점심이 아니라, 계절을 먹는 한 끼였다.
겨울에 따뜻한 국물이 필요할 때, 부모님과 함께 올 곳을 찾을 때, 시장 분위기 속에서 잠시 쉬고 싶을 때. 그런 날이라면 충분히 선택할 이유가 있다.
5. 남대문시장 안에서 고민 중이라면
갈치골목에는 다른 선택지도 많다. 생선조림, 칼국수, 분식까지 다양하다.
그럼에도 도가니탕을 고를지 고민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된다.
- 오늘 날씨가 어떤지
- 몸 상태가 어떤지
- 자극적인 맛이 필요한지 아니면 편안한 맛이 필요한지
나는 부동산 현장을 다닐 때도, 투자 결정을 할 때도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내 상황에 맞는 선택인가. 음식도 마찬가지다.
마치며
골목을 나오니 다시 남대문시장 특유의 소음이 들렸다.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70년을 버틴 가게는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는 매일같이 이 국물을 찾았을 것이다.
다음 겨울에도 아마 나는 또 회현역 5번 출구로 나올 것 같다. 날이 차가워지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집이 하나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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